통영의 봄길 맞이
- 도원결의의 끈끈한 우정, 통영에서 피어나다
내가 대학 시절부터 인연을 맺은 ‘도원결의’ 모임의 삼총사(나와 선·후배)는 40년 넘게 우정과 우애를 쌓아왔다. 부부 동반으로도 자주 만나 삶을 나누며 함께한 시간이 인생의 한 부분이 되었을 정도로 친밀하다.
지난달, 신년을 맞아 단합대회를 겸해 부부 동반 겨울 바다 여행을 계획했다. 처음에는 내가 자주 이용하는 제주 민박집을 고려했으나, 눈이 많고 바람이 매서워 남해안을 선택했다. 마침 삼총사 중 후배인 교수님의 딸이 검사로 근무하는 통영이 여행지로 정해졌다.
통영은 과거 ‘충무’라 불리던 도시로, 충무공 이순신 장군과 연관이 있는 유서 깊은 곳이다. 게다가 국가와 군에서 지엄한 법을 다루는 후배 딸 부부가 신혼을 보내는 둥지이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우리는 봄이 오는 길목에서 새로운 기운을 얻고자 설레는 마음으로 길을 나섰다.
성공한 기업을 일궈낸 선배님의 차로 5시간을 달려 도착한 첫 방문지는 ‘이순신공원’이었다. 이 공원은 1592년 8월 14일, 임진왜란 당시 한산대첩이 벌어진 곳을 기념해 조성되었다. 이순신 장군이 지휘한 조선 수군이 일본군을 대파하고 해상 주도권을 장악했던 역사적인 승첩지다.
쪽빛 하늘과 바다가 맞닿은 공원 중앙에는 높이 17.3m의 이순신 장군 동상이 우뚝 서서 한산도 앞바다를 굽어보고 있었다. 동상에 새겨진 ‘必死卽生 必生卽死(필사즉생 필생즉사)’라는 친필 문구가 가슴 깊이 와닿았다. 단순한 무장(武將)이 아닌, 문무를 겸비한 위대한 성웅이었음을 실감하며 그의 정신을 되새겨야겠다고 다짐했다.
이순신공원을 뒤로하고, 통영의 대표적인 명소인 ‘디피랑’을 찾았다. 이곳은 통영의 벽화마을인 동피랑과 서피랑을 모티브로, 사라진 벽화들이 다시 살아 움직이는 듯한 미디어 쇼를 선보이는 디지털 테마파크다. 남망산공원의 1.3km 산책로를 따라 걸으며 봄이 오는 길목을 만끽하고 아름다운 추억을 사진으로 남겼다.
다음으로 방문한 곳은 강구안(항아리처럼 바닷물이 둥글게 파고든 통영항). 이곳은 거북선이 탄생한 장소로, 조선 수군의 혼이 서린 곳이었다. 실제로 재현된 거북선을 보며 병사들의 생활을 상상해 보았다. 용의 머리를 한 배이지만, 전체적인 형상이 거북을 닮아 ‘거북선’이라 불렸다는 점이 아직도 흥미로웠다. 나는 지금도 ‘용선(龍船)’이라는 이름이 더 용맹스럽다고 생각하는 사람이다.

늦은 오후가 되자 중앙시장으로 향했다. 신선한 해산물이 즐비한 시장 입구에서 돔과 광어회, 그리고 통영의 명물 굴 요리를 맛보았다. 깊은 바다 내음을 머금은 해산물의 신선함에 감탄하며, 입안에서 오물거리는 미식의 즐거움을 만끽했다.
숙소로 돌아온 후에는 가져온 술을 나누며 도란도란 이야기꽃을 피웠다. 깜짝 방문한 후배 딸 부부와도 해후했다. 내가 오랫동안 보관해 온 대학 시절 앨범을 모두에게 펼쳐 보였다. 삼총사의 풋풋했던 추억이 생생하게 되살아났다. 아내들과 신혼부부는 남편과 아빠의 대학 시절 모습을 보고 깔깔대며 웃었고, 40년 전 추억 속에 흠뻑 젖어들었다.

이튿날 아침, 통영 명물인 도다리쑥국으로 속을 풀었다. '팔도식당' 주인은 “이 국을 먹고 두세 시간 안에 해독이 안 되면 간을 떼어내이소!”라며 걸쭉한 농담을 던졌다. 우리는 한바탕 웃으며 여유로운 아침을 맞이했다. 식당 주인의 유쾌한 농담과 함께, 신기하게 서로 닮아가는 부부의 모습도 돌아보았다.
케이블카를 타고 미륵산 정상에 올라 한려해상의 장관을 감상했다. 461m 높이에서 내려다본 다도해의 풍경은 끝없이 펼쳐지는 푸른 바다와 섬들의 조화로 장엄한 아름다움을 선사했다. 이틀 연속 파란 물감으로 칠한 듯한 쪽빛 창공과 혼연일체가 된 바다는 하늘의 선물이었다.

신혼여행을 온 듯 세 쌍의 중년 부부는 35년 전 모습을 재현하며 셔터를 누르느라 정신이 없었다. 1인, 2인, 3인, 4인, 6인으로 조화를 이룬 사진은 영원히 남으리라.
점심 식사는 장어요리였다. '장어 잡는 날' 식당에서 구이와 탕으로 푸짐하게 한 끼를 마친 후, 통영과 아쉬운 작별 인사를 나누었다.
400km에 달하는 귀갓길에서도 이야기는 끊이지 않았다. 손수 운전대를 잡은 선배님, 그리고 인생 경험이 풍부한 형수님. 그들과 삶에 임하는 자세를 논하며, 자녀들의 혼사에 대한 조언도 들었다. 함께한 세월만큼이나 깊어진 정(情)도 확인했다.
이번 여행은 단순한 휴식이 아니었다. 통영의 역사와 자연 속에서 우정을 쌓고, 삶의 의미를 되새기는 값진 시간이었다. 소녀처럼 좋아한 아내와 형수님께도 훌륭한 힐링이 되었을까? 멀리 딸을 떠나보낸 제수씨는 이번 상봉이 얼마나 반가웠을까?
소꿉장난하듯 살아가는 아름다운 신혼부부의 앞날에 소박한 기대도 걸어본다. 그들은 기성세대가 시계추를 되돌려 놓은 이 나라의 법과 질서를 바로잡아 주리라. 성웅 이순신의 기운과 통영의 맑은 정기를 마음껏 받으며, 올곧게 살아갈 것을 믿고 응원한다.
나는 충무공의 가르침처럼 '필사즉생 필생즉사'의 정신으로 앞으로의 도전을 맞이할 용기를 얻었다.
통영에서 피어난 우정의 향기가 오래도록 마음속에 남아 있기를 바라며, 다시 활기찬 일상으로 돌아왔다. 아직도 한려해상의 푸르디푸른 바다가 눈앞에 어른거리고 장군의 외침이 귓전을 맴돈다.
벌써 통영앓이가 시작되었나 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