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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도쿄 여행

bigbeacon 2025. 3. 7. 14:05

1980년대 후반 서울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리고 한국의 경제가 도약하던 시절 회사에 입사하여 약 15년간 동고동락을 하였던 당시의 주인공인 OB들과 함께 2박 3일 일정으로 짧은 도쿄 여행을 다녀왔다.

당시 한국에 파견되어 회사를 설립하고 사원을 뽑아 조직의 토대를 만들어 준 일본인 상사들이 있었다. 사장과 각 부서장들이었는데, 한국 직원들과 함께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낸 그들도 이제는 어언 60대 후반부터 70대 중반의 나이에 이르렀고 그중에 공장장을 역임하였던 두 명은 이미 타개하였을 만큼 세월의 흐름을 느끼게 하였다.

우리는 그들이 건강한 모습으로 있을 때 하루라도 빨리 만나 회포를 풀고자 이번 여행을 기획하였다.
정치와 역사적으로는 여러 난맥으로 얽혀 있어서 감정과 한이 서려 있는 한일 관계이긴 하지만, 경제적인 입장에서는 우리가 일본을 배제한 채 살아갈 수 없다는 엄연한 현실이 있다.

또한 기초과학 분야에서 앞서 나간 일본이 한국에 설립한 회사에 입사하여 그들의 우수한 DNA를 찾아내어 한국 상황에 걸맞게 적용시키느라 분투노력하였던 우리들도 다들 60줄에 들어섰다.
1월부터 OB단톡방에 이번 여행에 참가할 멤버를 모집하고 일정을 의논하면서 일찌감치 항공권과 호텔도 예약하였다.  
여러 사전 준비 작업에 착수하였는데 어떤 선물을 가져야 할 것인지에 대한 의견도 많았으나 OB 중에 바이오기업을 설립하여 대표로 있으신 선배께서 자사 개발품인 친환경 제품을 선뜻 선물로 주겠다고 하여 그것을 기본으로 삼고 한국 최고의 완도산 최고급 김을 광주의 후배가 선물로 가져왔고 수도권 후배는 허니버터 아몬드까지 추가하였다.

4월 26일 맑은 아침 일찍 6시 반에 김포공항 출국장에 집합하기로 하였으나 어인 일인지 한 명은 나타나질 않아 우리들의 발을 동동 구르게 하였다.
김포공항은 아침 일찍부터 출국하는 사람들로 장사진을 이루었으니 우리의 마음은 타들어 갔는데, 짐으로 부친 친환경 선물에 백색 가루가 들어 있어서 스캐닝에 통과가 되지 않았다.
검색반의 부름을 받고 안으로 소환되어 일일이 선물 내용을 확인해 주었는데 모든 트렁크마다 그 선물이 들어 있었기에 매번 해명을 해야 하는 해프닝도 있었다.
늦게 나타난 후배의 짐은 여러 번의 설명 덕분에 문제없이 통과하여 그나마 다행이었다.
1시간 늦게 나타난 후배 때문에 아침 식사를 할 수 없어서 라운지에 있는 물과 우유 등을 가지고 나와 간신히 요기를 하였다.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니 하늘은 맑았고 구름 위로 비행하는 창가에서 현해탄에 떠있는 요트를 발견하여 사진을 찍었다. 하네다공항에 도착하니 인파가 몰려서 입국심사에 시간이 많이 소요되었다. 요즘은 비행기 안에서 입국심사 서류를 주지 않기 때문에 비지트재팬 웹으로 미리 정보를 입력하여 갔으나 공항에서 와이파이가 터지지 않아서 활용할 수가 없었다. 부득이 종이 서류를 작성하여 입국심사를 마치고 다시 세관신고서를 작성하여 심사대를 통과하니 1시간이 걸렸다. 네 명의 OB들은 짐도 있었기에 택시 한 대로 호텔까지 이동하였다. 호텔에 도착하니 옛날에 마케팅을 전수해 줬던 일본인 상사와 하루 먼저 도쿄에 입경한 선배 OB가 로비에서 대기하다 반겨주었다.

아직 체크인을 할 수 없는 시간이어서 짐을 맡겨 놓고 호텔 옆의 식당으로 향하여 가락국수와 소바로 가볍게 점심을 먹었다.
숙박 호텔은 시나가와(品川)에 있는 오이 마치(大井町) 역 앞에 위치하고 있는 아워즈인한큐호텔이었다. 이 호텔은 전철역에서 1분 거리에 있었는데 싱글룸과 트윈룸 타워로 나눠져 있고, 대욕장 사우나도 갖추고 있었다.
역에서의 접근성도 용이하며 호텔 가까이에 많은 상가도 포진하고 있어서 쇼핑에도 안성맞춤이었다.
일본의 대표적인 브랜드인 유니클로와 무인양품이 역 안에 있었으며 호텔 내에도 잡화점과 대형 식품점이 자리하고 있어서 여러 물건들을 쉽게 구입할 수 있는 장점도 있었다.
우리는 점심을 마치고 곧바로 오이마치역으로 이동하여 JR(일본 철도) 일일권을 구입하고 간다(神田) 역으로 향했다.
간다에는 간다외어학원이 있는데 우리가 처음에 일본에 와서 6개월간 어학연수를 받았던 추억의 랭귀지스쿨이었다.
1987년에 설립된 이 어학원은 선배의 연수 시절부터 쭉 우리들에게 일어를 깨우쳐준 은혜로운 공부의 장소였다.
친절한 선생님들과 함께 했던 배움터였고, 스피치 콘테스트에 나가서 우승하는 등 많은 추억거리를 선사한 곳이어서 감개무량하였다.
어학원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고 추억을 소환하다가 근처에 위치하고 있는 예전의 본사 빌딩을 찾아갔다.
항상 일본인 상사들을 만날 때마다 갔었던 건물은 그대로인데 빨간 대형 간판은 사라지고 없었지만(본사가 시나가와역으로 이동하였음), 그래도 관계회사가 들어있었고 지주회사의 회장인 4대 오너가 근무하고 있는 곳이어서 의미가 컸다.

건물을 배경으로 단체사진을 찍고 있었는데 때마침 대형 렉서스에서 내린 4대 오너와 조우하게 되어 반갑게 인사하고 그와 함께 기념사진을 찍은 것이 큰 추억으로 남게 되었다.
감히 일반 사원들이 쉽게 만날 수 없는 전 세계를 지휘하는 그룹사의 총수인 4대 오너도 이제 60을 바라보는 나이가 되어 머리카락도 듬성듬성해졌지만 선배는 그가 신입사원이었던 시절부터 연수 동기로 함께 지냈던 추억이 있었기에 가장 반가워했다.

우리는 간다에서 아키하바라(秋葉原)로 이동했는데 1980~1990년대에 일본의 전자산업이 세계를 주도하였을 당시 워크맨이나 카메라 등을 사러 많이 들락거렸던 전자상가가 이제는 많이 변모한 모습으로 남아 있었다. 이제는 한국의 전자산업이 일본을 앞서고 있는 분야가 많을 정도여서 아키하바라의 명성은 예전만 못하였으나, 선물이나 부탁을 받은 전자제품을 사러 흥정하던 낭만이 서려 있는 곳이었다. 당시에는 즉석에서 종업원과 밀땅하여 와리비키(할인)도 가능했다.

아키하바라를 거쳐서 우에노 공원으로 향했는데 예전에는 노숙자들이 많이 보였지만 이제는 깨끗한 모습으로 변모하여 우리를 반겨 주었다.
에도시대의 잔상을 회고하고 사이고다카모리의 동상을 보며 사진도 찍고 일본의 역사 이야기도 많이 들으면서 역 근처에 있는 시장도 가 보았다.
요코초(橫町)는 남대문 시장을 방불케 할 정도로 전 세계의 사람들로 인산인해였는데 엔저 특수를 누리고 있었다.
신선한 해산물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시장을 본 다음에는 오카치마치(御徒町)를 거쳐 아사쿠사(淺草)에 가보자라는 의견에 동의하여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였다. 아사쿠사는 상업적인 사찰의 진수를 보여줬는데, 한국의 조용한 절과 정반대로 대비되는 곳이었다.
일본의 절에는 오미쿠지(おみくじ: 그날의 운세를 재미로 적어 놓은 100엔의 제비 뽑기)가 있는데, 그밖에 온갖 기념품과 먹을 것으로 도배한 상가들이 도열하여 전 세계에서 몰린 관광객들과 어깨를 부딪쳐가며 구경해야만 했다.
불상 앞에서는 5엔짜리 동전을 던지며 참배를 하고(5엔의 발음이 좋은 인연이라는 ご縁의 발음과 같아서 생긴 풍습) 소원을 비는 모습이 많이 보였다. 수많은 서양 사람들이 따라 하며 동참하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
사찰이 상업적으로 이렇게까지 이용될 수 있는가 하는 것에 놀라움을 금치 못하고 긴자(銀座)로 향하였다. 가로등과 네온사인이 서서히 켜질 무렵, 긴자에서도 유명하다는 우마이초밥칸(うまい鮨勘) 본점에 가서 미리 예약한 코스 요리로 초밥을 즐겼다. 10가지의 코스요리에 생맥주, 뜨겁게 덥힌 사케와 차디찬 레이슈(冷酒)를 마시며 일본 음식의 진수를 느껴 보았다.
하지만 긴자에서 먹은 초밥으로는 배가 차지 않고 도쿄의 밤을 즐겨보자는 이유로 이어진 2차 3차 교류회에서 술도 마시고 가락국수로 마무리했는데 그렇게 도쿄의 첫날밤은 성대히 저물어갔다.

4월 27일 아침 일찍 일어난 우리는, 도쿄에 수없이 다니면서 한 번도 가보지 못한 일왕이 살고 있는 황거(皇居)를 가 보기로 하였다.
오이마치에서 전철로 도쿄역까지 갔는데 비가 부슬부슬 내렸다. 도쿄역은 서울역 모습과 비슷한 조형물인데 외국의 귀빈이 내리면 마차로 손님을 모신다고 한다.

황거는 하루에 두 번(9시 반과 1시) 300명씩 입장을 제한하는데, 우리는 아침 일찍 황거 앞의 스타벅스에서 서양인들 괴 함께 아침을 때우고 황거 앞 길교문 근처에 줄을 서서 70번대 번호를 부여받았다. 300명으로 마감하자마자 각자 신원증명 서류를 작성하여 여권을 지참하고 줄을 서서 들어갔다.
입구에서는 모든 사람을 앉혀 놓고 내부에 관련된 안내를 일이와 영어로 소개하였다.
안내 책자에는 한국어도 있어서 많은 참고가 되었지만 여러 언어로 나뉜 안내 가이드에서 한국어는 빠져 있었기 때문에 부득이 일어 가이드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한국인 가이드를 왜 없는지는 의문이었지만 혹시라도 일본 왕실과 관련된 역사를 소개할 때 감정적인 부분에서 문제를 제기하거나 소동을 일으킬만한 원천적인 불씨를 봉쇄하고자 하는 의도가 아닐까 하는 뇌피셜도 있었다.
황거 내부는 고즈넉한 분위기였지만 아직도 천황이라는 칭호를 부여하며 정치와는 별개로 일본 국민들과 함께 하고 있는 일왕이라는 존재가 과연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번 생각해 보는 기회였다. 무려 34만 평이라고 하는 그 넓은 장소를 가지고 재산 가치가 5조 원이 넘는 곳에서 많은 국빈들을 영접하며 일본 국민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고 있는 왕실의 모습이 정치와는 별개로 일본인들의 마음속에 자리 잡고 있는 또 다른 안식처임을 느끼게 하였다. 견학 코스는 1시간 남짓이었는데 에도성의 발자취를 더듬어 21세기의 황실로 이어지기까지의 역사는 건물 바깥에서만 구경하는 수박 겉핥기로 깊이 알 수가 없었다.

황거를 견학하느라 배가 고파진 우리는 바로 맞은 편의 신마루노이치(新丸の一) 빌딩에 자리하고 있는 한식당으로 향하였다. 5층에 자리 잡고 있는 한식당 수라간에서는 비빔밥과 찌개를 먹으며 에너지를 보충하였다. 점심을 먹은 이후로는 바로 긴자까지 걸어갔는데 토요일이어서 차량이 없는 거리로 막아 놓았고 많은 사람들이 차도를 걸어 다니며 휴일 오후를 즐기고 있었다.
일본은 4월 27일부터 골든위크 연휴가 시작되어서 많은 가족들과 친구들이 긴자에 몰려들었는데 우리는 긴자 1 정목(丁目)에서 8 정목까지 천천히 걸어가면서 예쁘게 치장한 현대적인 도쿄를 만끽하였다. 가장 일본에서 땅값이 비싼 곳은 한 평에 6억 원을 호가한다는 말도 들었는데 이날만큼은 그 비싼 땅을 마음껏 밟아주었고 길거리는 국제 인종 전시장을 방불케 하였다. 긴자를 지나자마자 잡화점 돈키호테가 눈에 띄었기에 쇼핑을 하러 들어가 보았다. 나는 휴식을 취하면서 맞은편에 있는 완구 박물관을 혼자서 가 보았다. 수없이 많은 캐릭터와 피겨, 게임기로 꽉 차 있었는데 어린이날을 얼마 남겨 놓지 않은 상황에서 부모들이 해맑은 미소를 띠는 애들에게 완구를 사주는 모습을 보며 어느 나라나 어린이들은 귀엽고 이쁘며 부모들은 사랑스러운 눈길로 바라보는구나!
나도 빨리 할아버지가 되고픈 상념에 빠져들었다.

어제 하루도 2만 2 천보를 넘게 걸었고 오늘도 벌써 2만 보 가까이 걸은 우리는 지친 몸을 이끌고 일단 호텔로 돌아와서 3시간 가까이 자유 시간을 갖기로 하였다.
나는 쇼핑할 것이 별로 없어서 한번 상가를 둘러본 후에 온천욕장에 들어갔다. 투숙객은 500엔이면 온천욕을 할 수 있었는데 간단한 수건을 들고 들어가서 몸과 마음을 녹이며 일본의 발달된 온천욕을 마음껏 즐겼다.

어느덧 6시가 되었는데, 오늘 저녁은 이번 여행의 하이라이트를 장식하는 디너였다.
OB들은 왕년에 한국 회사를 일으켜 세웠던 상사들과 함께 할 식사 자리로 향하였다. 오이 마치 역에서 5분 거리에 있는 다케조(竹蔵)라는 이자카야였는데 9명의 한국인과 일본인들이 만나서 부둥켜안고 반가워하며, 과거를 회상하면서 안부를 묻고 연신 건배를 반복하였다. 특정인의 이름을 세 번씩 불러주느라 선거유세장만큼의 열기로 가득하였다.

그 옛날 우리들에게 실적을 달성하라는 것을 요구하면서 식당에서 쓰는 하얀 종이에 숫자 목표를 쓰게 하고 된장으로 도장을 찍어서 약속을 받아내곤 했던 옛날 사장의 모습을 추억거리로 웃음이 만발하였다.
과거에 대한 즐거운 회상을 더듬어가다, 이번에는 우리가 일본에 방문하였으니 올 연말 송년회에는 그들이 한국에 방문하기를 요청하였다.
그리하여 사장이 대표로 식당의 하얀 티슈 위에 '올 연말에 반드시 한국에 가겠습니다'라는 서약서를 쓰고 간장으로 지문을 찍어서 약속을 하여 보관하였다. 한국에서는 된장, 일본에서는 간장이었던 셈이다.
그들과의 이야기는 끝이 없어서 3시간의 1차를 마감하고 기념사진을 찍은 후에 근처로 옮겨서 2차를 하였는데 1차는 일본 측에서, 2차는 우리들이 부담하였다.
2차 자리도 이자카야였는데 생맥주를 마셔가며 못다 한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일본어가 완전치 않았던 직원들을 통역해 주느라 바빴지만 정담에 흠뻑 젖어 시간 가는 줄을 몰랐다.
어느덧 늦은 밤 시간이 되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연말의 약속을 남기고 그들과 오이마치역에서 이별을 하였다.
아직도 여운이 남았던 멤버들은 3차로 가락국수이나 라면을 먹겠다며 식당을 찾아내서 밤늦게까지 속을 채웠다.

다음 날 아침은 호텔 조식으로 했는데, 이 호텔은 상당히 합리적인 800엔 가격에 뷔페 또는 일식을 먹을 수가 있었는데, 우리 돈으로 7,000원 정도에 불과한 돈으로 호텔에서 식사를 할 수 있다는 사실에 너무나 놀랐다.
한국의 비등하는 거품 물가를 떠올리며 쓴웃음이 났다.

간단하게 식사를 마친 우리는 호텔 앞 정류장에서 공항 리무진버스를 타고 하네다 국제공항으로 향하였다.
면세품 선물로는 닛카의 싱글몰트 위스키 요이치(余市)와 사케 닷사이(獺祭)를 추천해 주었고, 유니클로에서 의류를 득템 하였다.

모처럼 맘이 맞고 흥겨운 일행들과 함께 찾아온 도쿄의 2박 3일 일정은 체제 시간이 48시간에 불과하였지만, 많은 이야깃거리와 풍성한 추억을 만들어주었다.

지나온 세월은 결코 헛되지 않았다.
그 옛날에 회사를 일으켜 세우느라 앞장서서 동분서주하던 30대 상사들이 이제는 70대의 노인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자각하면서, 우리도 언젠가 늙어가겠지만 건강하게 나이를 먹으면서 더욱 숙성해 가자는 다짐을 하며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도쿄야 잘 있거라!